외국 경매를 서핑하다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다.
이화 보통우표의 고액 3종의 재쇄와 관련된 대목인데.....
단순하게 일본이 한일 우편사업합동을 기념해서 만든 우표첩에 붙이기 위해 재고가 없는 고액 3종을 인쇄했다는 설이 지배적이었으나,
독수리 우표가 도착할 때까지 재쇄를 해서 단기간 사용했다고 한다.
설득력 있는 의견으로 보인다.
이 외국인은 어떤 근거로 이런 메모를 남긴 것일까?
자료를 더 찾아봐야 하는 이유가 또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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