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일통신합동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통신권을 박탈하고 이를 기념코자 남아 있던 대한제국 우표들로 만들었다는 <한국우편절수첩>에 붙이기 위해 다시 인쇄했다는 게 정설인데........
<통감부 통신사업 제1회 보고>라는 자료에 의하면 한일통신합동 인계시 대한제국 우표의 잔량이 9,517,559매였고 그 중 3전짜리 기념우표가 무려 22,448매가 포함되어 있었다. 300부밖에 되지 않는 증정용 우표첩에 붙이려고 굳이 어극40주년 우표를 다시 인쇄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우표첩의 추가 제작을 염두에 두더라도 600매-1000매 정도만 있으면 되는데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고인이 되신 미즈하라씨도 <불가사의 한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으나 속시원히 밝혀진 바는 없다. 나중에(1910년 이후에) 발간되는 책에 붙이려고 추가로 제작했다면 말이 된다.
물론 남아 있는 여러 자료집에도 이 무공우표가 붙어 있으니까.
그럼에도 오늘은 잠도 안 오고 어극재쇄 무공우표의 출현 배경이 궁금해지는 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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