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3월 25일 미국 NEW HAVEN에서 접수되어 시애틀에서 30쌍팀의 부족인 날인을 받고 明治42년(1909) 4.19부산에서 12전부족인을 추가하여 4.20서울에서 출발하는 경의선 철도편으로 4.21평양(?)을 거쳐 4.22선천 우편취급소에 도착한 귀한 실체입니다.
당시 외국에서 들어 오는 우편물도 철도우편을 이용했으며 이 경우 철도일부인을 날인하여 경유표시를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작 제가 궁금한 것은 최종 도착지가 선천인데.......경의선 열차가 정차하는 곳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국명미상의 일부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굳이 열차에서 우편물을 내려서 하루를 재워가며 일부인 하나 더 찍어 다음 날 오후에야 선천우편취급소에 도착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지요.
그냥 보내면 4.21 선천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평양.안주.정주 우편국중 하나로 사료되는 국명미상의 일부인 좀 봐 주시기 바랍니다.
'우표의 향기(1945년 이전 철도우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정10년(1921년)9.8 경성원산간 철도인 실체 (0) | 2009.05.20 |
---|---|
소화8년(1933년)9.8 천안이리간 하一편 (0) | 2009.05.20 |
<신발견>소화17년(1942년)6.3 釜山京城(別)間 철도일부인 (0) | 2009.05.16 |
대정10년(1921년)8.20 원산함흥간 변종소인 실체 (0) | 2009.05.13 |
1905년 경부선 개통 당시 사용되던 철도인 (0) | 2009.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