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장군, 외무부 장관을 지낸 사람이지만 미국으로 망명했다 북한으로 들어가 최후를 맞은 기구한 인생사를 가진 사람입니다.
최덕신
최덕신(崔德新, 1914년 9월 17일 ~ 1989년 11월 16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생애
김일성이 다니던 만주의 화성의숙 교장이었던 최동오의 아들이다.
중국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앙군에서 근무하던 최덕신은 1946년 귀국하여 최동오와 장인 류동열의 권유를 이기지 못해 1947년 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특별반 3기생으로 입학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소위로 임관하였다. 최덕신은 소위 임관 뒤 소령으로 특별 진급하였다. 최덕신은 대전의 2연대 연대장으로 부임했고, 그곳에서 중령으로 승진했다. 2연대 연대장직을 수행하던 그는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1] 국방부는 1948년 12월 15일,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던 최덕신 등 8명의 중령을 대령으로 특진발령하였다. [2] 1949년 미국 포트 릴리(Fort Riley) 육군종합학교를 졸업(초등군사반), 1950년 미국 포트 베닝(Fort Benning) 보병학교를 졸업(고등군사반)하였다. 그 뒤 국군 제1군단장을 거쳐 육군중장으로 예편하여 5.16 직후 외무부 장관을 거쳐 1963년 8월 9일, 서독주재 대사로 임명되었다. [3] 이어, 통일원 고문, 주 베트남 공사, 한중일보 사장(1972년) 등을 지내다가[4] 미국으로 망명했다.
1986년 4월 아내 류미영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다.[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조선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청우당 당수 외에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의 여러 직위를 맡았으며, 조국통일상도 수상했다. 2007년 현재 유해는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어 있다.[6]
북조선의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 중 첫 부분인 1부부터 3부까지가 최덕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7]
상훈
- 1990년 8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조국통일상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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