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외체인은 잘 안보이지만...... 친일행적이 뚜렷해 지금은 타도 대상이 된 김활란의 편지글이다.
이화여대를 거쳐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 철학박사 출신의 인텔리 여성이었지만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젊은 여성들은 위안부로, 남자들은 징용.징병으로 나갈 것을 노골적으로 선동했다.
동족을 팔아 호의호식했던 인간들이 해방후에는 애국자로 둔갑했던 사례가 얼마나 많았는지......열받는다ㅠㅠ.
아래는 위키백과에서 본 김활란
김활란(金活蘭, 일본식 이름: 야먀기 카쓰란(天城活蘭), 1899년 1월 18일 ~ 1970년 2월 10일)은 일제 강점기의 대한민국 여성운동가, 계몽운동가, 언론인, 교육인이다. 이화학당의 초등, 중등, 고등부를 거쳐 1918년 이화학당 대학부(이화여자대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중앙기독교청년회(YMCA)에서 활동하다가 여자 YMCA를 독립, 1923년 유각경 등과 함께 조선 중앙여성기독교청년회(YWCA)를 조직하였다.
1923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 웨슬리안 대학교에 편입, 1924년 학사 학위를 받고, 보스턴 대학교 철학과에 편입하여 1925년 9월에는 철학석사를 받았으며, 귀국 후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교사와 교감, 부교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10월에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박사를 받았다. 일제 강점기 1920년대~1930년대 초 각종 사회운동과 계몽운동에 힘써왔으나, 1936년 전후로 친일파로 변절해 친일 칼럼, 강연 논술활동을 하는 한편 1941년 창씨개명 후 전시 체제에 협력하여 칼럼, 강연, 학도병 독려 등 매우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했다.
광복 이후에는 반탁운동에 참여한 뒤 48년 장면, 조병옥과 함께 파리 UN 총회에 파견되어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받고 귀국했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전시 내각에 참여했다가 정식 공보처장으로 활동하였다. 그 뒤 이화여자대학교 초대 총장을 맡았으며, 언론인으로는 영자(英字)신문사 '코리아타임즈(The Korea Times) 사장을 맡았다. 1928년 미국 유학중 "무지와 구습의 타파"를 이유로 공개 단발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아호는 '우월'(又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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