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Korea 호에 실려 갔던 우편물.
태평양을 오가던 미국 배 이름이 고려호였다고 한다.(아래 기사 참조)
S.S. Korea
이 선박은 샌프란시스코와 홍콩, 마닐라 간의 서비스를 위해 미국 선박회사 Pacific Mail Steamship Company에 의해 1898년 주문됐다. 그러나 축조작업이 생각보다 더디어 1902년 6월17일에야 완성됐다. 당시 Korea 선박과 함께 주문하여 만들어진 Siberia 선박의 제조비용은 397만달러였다. Korea 선박은 Pacific Mail Company 의장의 딸인 Katherine Winthrop Tweed에 의해 이름이 붙여졌다. 그 당시 태평양에서 최대 선박 중 하나였다.
최대시속은 20knots이고 평상시 16knots 속도를 유지했다. 길이는 572 Ft 4 Inch, 빔은 63 Ft, 총무게는 11,284 Ton으로 최대 300명의 1등석 승객을 수용했다. Korea 선박은 1902년 8월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홈 포트로 도착했다. Korea 선박은 그 당시 항구에 들어온 배들 중 가장 큰 규모의 선박이었다.
첫 태평양 횡단을 한 8월8일에는 2천여명의 사람들이 부두에 모여 Korea 선박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당시 Korea 선박은 150여명의 객실 선객과 300명이 넘는 3등 선객, 1만톤의 기계들과 음식 그리고 1.7밀리언달러의 가치를 가진 보물들을 운반했다.
1915년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Pacific Mail Steamship Company는 선박의 선원과 직원들이 같은 언어를 써야한다는 룰에 부딪혀 그들의 선박들을 팔기 시작했다. 8월에는 가장 큰 선박들인 Manchuria, Mongolia, Korea, Siberia, China가 웨스트버지니아의 Atlantic Transport Company에게 525만달러에 팔렸다. 이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Korea 선박은 불법으로 미국에 밀입국하는 중국인들과 관련한 음모에 연루되어 86명의중국인 밀항자가 발견되기도 했고, 산사태로 인해 파나마운하의 운항허가가 통과되지 못해서 돌아가야 했던 적도 있었다.
1915년 12월6일 해협에서 Princess Sophia와의 충돌로 선박이 손상되었다. 그 후 Korea 선박과 Siberia 선박은 1916년 일본 요코하마의 Toyo Kisen Kaisha에 모두 팔렸고, Korea Maru로 이름도 바뀌었다. 일본인의 소유 아래 이 선박은 해양우체국으로서 1916년부터 1921년, 그리고 1930년에단 5주간 일을 했고, 1930년 일본 고베에서 궁극적으로 폐선하여 1934년 해체되었다.<월드코리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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