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이걸 볼 때마다 공포를 느껴야했다>
1950년대 남미의 어떤 군사정권은 반정부인사들을 잡아들여 여느 독재정권처럼 고문을 가했다. 고문에 사용한 도구중에는 특이하게도 콜라병도 있었다. 그들은 피해자들의 항문과 성기를 콜라병으로 고문하며 인간성을 파괴했다. 왜 하필 콜라병이었을까?
그들이 콜라병을 고문도구로 택했던 이유는 이것이 갖는 '흔함' 때문이었다. 콜라병은 길가에 돌부리처럼 흔한 물건이다. 어딜가나 쉽게 눈에 띄는 이 물건은 고문의 기억을 잊혀진 공포에서 일상의 무력감으로 전이시켰다. 피해자들은 평생 콜라병을 볼 때마다 그날의 공포를 떠올려야했고, 뼛속 깊은 무력감을 느껴야만 했다. 콜라병은 그렇게 ‘효과적인’ 고문도구였다.
그의 역할은 무엇일까?
김기춘 옹이 청와대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반민주의 상징과도 같은 그의 등용에 반발하고 있다. 이제 청와대에서 공안검사출신들을 찾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김기춘만큼 상징적인 인물은 드물다. 40년전 유신을 선포했던 대통령의 딸이 유신헌법의 산파를 부활시켰다. 이것이 유신의 부활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그는 부활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됐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요직중의 요직으로 언론의 노출도가 가장 높은 자리이기도 하다. 이제 TV를 켜면 어느 채널에서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구시대의 퇴물이었던 정치인이 하루아침에 일상을 습격했다. 그는 이제 콜라병만큼이나 쉽게 눈에 띄는 곳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장고 끝에 임명한 그의 역할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탄핵대비용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촛불방탄용이라고도 한다.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 한가지 있다. 사람들이 김기춘의 부활을 바라보며 느껴지는 감정은 분노와 무력감이다.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어찌할 수 없다. 한없이 무력하다.
김기춘은 콜라병이다. 유신은 그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기나긴 고문이었다. 유신의 엄혹함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김기춘의 존재는 콜라병과 같다. 유신의 피해자들이 그를 보면서 느끼는 무력감은 고문피해자들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된 콜라병을 볼 때마다 느꼈던 감정과 유사하다. 그의 '임무'는 콜라병처럼 자주 발견되는 곳에 배치돼 적의 일상에서 무력감을 전파하는 것이다.
진짜 기억해야 할 것
김기춘이란 이름에서 떠오르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유신헌법과 초원복집사건, 이것들을 관통하는 것은 권력의 무소불위(無所不爲)함이다. 그는 권력이라는 칼을 어떻게 휘둘러야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국정조사 파국과 민주당의 장외투쟁으로 한껏 달아오른 정국에서 이런 권력남용의 대가가 대통령의 곁에 배치됐다.
대통령이 신임 비서실장을 임명하자 사람들의 관심은 김기춘이란 사람이 누구인지, 초원복집사건이 무엇인지에 쏠렸다. 초원복집사건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남이가'따위의 발언이 아닌, 비극적인 사건의 결말이다. 가해자-공모자 전원 석방, 제보자(기자) 전원구속이라는 기막힌 결말말이다.
당시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던 '불법도청사건'이라는 프레임은 지금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주장하는 '불법감금사건'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초원복집사건을 통해 권력의 야만을 기억하려하지만, 저들은 같은 것을 통해 권력의 무소불위를 기억하려 한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에게 김기춘의 등용은 적에게 무력감을 안기는 한편 아군의 사기진작을 도모하는 양수겸장의 카드다. 훌륭한 대통령은 아니나, 만만하게 볼 대통령도 아니다.
콜라병의 공포와 가장 닮아있는 인물이 한명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유신의 고통을 온몸으로 체감했던 사람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존재는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거대한 콜라병이다. 유신은 40년전의 추억이지만, 2013년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유신호랑이들이 지배한다.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상황인지 환기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김기춘 발탁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일지 모른다.
"세상은 그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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