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삼계가 화택이니, 어찌합니까

동인(東仁)姜海元 2013. 12. 3. 10:48

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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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가 화택이니, 어찌합니까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30

취임 1년도 안돼 안채, 사랑채, 행랑채 모두 불타고 있어
잘못 꿴 단추 모두 다시 풀고, 처음부터 다시 꿰야 할 때
더 지체하면 국민을 첩첩한 불길 속으로 밀어넣게 될 것

요즘 우리 처지를 생각할 때면 삼계(三界)가 화택(火宅)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까지 모두 불타고 있으니 오도 가도 할 곳이 없어 보이는 까닭입니다. 취임 1년도 안 돼 이렇게 됐으니 운명을 탓할 수도 사람을 탓할 수도 없고, 막막할 뿐입니다.

삼계화택(三界火宅)은 본래 불가에서 나온 말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불타는 집이라는 뜻으로, 생로병사와 윤회의 덫에 갇힌 인생의 숙명적인 고통을 뜻하는 것입니다. 고통의 뿌리인 집착에서 벗어나기 힘든 인간 운명을 비유한 것이기도 하지요. ‘나’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니 번뇌망상에서 벗어날 수 없고, ‘나’의 애정·욕망·집착을 버리기 힘드니 고통을 털어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가에선,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諸行無常·제행무상), 만물 중에 변함없는 ‘나’라는 것은 없다(諸法無我·무법무아)는 것을 깨달아, 번뇌망상을 털어버리고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말합니다.

‘나(혹은 아버지)’에 대한 집착, 이를 부정한 것들에 대한 통한과 복수…, 박근혜 대통령의 운명은 삼계화택의 상징 같아 보입니다. 부모님을 모두 흉탄에 잃었으니 과거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절치부심 끝에 최고 권력을 획득했지만, 지금 돌아가는 걸 보면 그 자리가 펄펄 끓는 도가니 같아 보입니다. 미래를 어찌 점치겠습니까마는, 지난해 대통령 당선이 곧 비운이라던 사주가들의 흑룡띠(박근혜 후보) 운명에 대한 점괘가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돌아보면 취임한 이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인수위 때부터 인사 문제로 모욕에 가까운 조롱을 당했습니다. 급기야 미국 순방 중 대변인이 인턴 여대생을 성추행했다가 쫓겨난 윤창중씨 사건이 일어났죠. 그런 인사 사고는 계속됩니다. 채용도 잘못하더니, 내치는 것도 잘못하다가, 검찰을 미래의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총장을 그렇게 짓밟아 내쫓았으니, 보복을 생리로 하는 검찰 권력이 가만있을 리 만무입니다. 무엇보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공작은 이 정권이 안고 살아야 할 치명적인 암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적반하장으로 뒤집어씌우고, 엉뚱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작으로 뒤엎으려 했으니, 이제는 무엇으로도 치유하기 힘들게 됐습니다. 잘못 칼을 들이댔다가는 환자가 죽어버릴 수 있는 형국입니다. 게다가 죽기를 각오하고 잘못을 도려낸다면 회생을 기약할 수 있겠지만, 지금 대통령의 자존심과 독선을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입니다.

대통령 한 사람이 화택에 들어앉은 것이야 저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 해도 국민이 무슨 죄입니까. 지금은 불행하게도 국민 모두가 불타는 집에 끌려들어가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진퇴를 놓고 분열하고 있으니 국내 정정은 평안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휴전선 양쪽에 포진한 세계 최악의 무력이 지금 서로의 심장을 겨냥한 채 방아쇠울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눈썹에 불이 붙은 상황입니다. 남북이 입만 열면 응징·박살·원점타격 따위의 서슬 시퍼런 말들을 퍼붓고 있습니다. 오발이라도 났다가는 한반도의 운명이 어찌될지 상상이 안 됩니다.

국내가 그렇고 남북이 펄펄 끓고 있는데,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도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동북아 패권을 놓고 벌이는 중국과 미국·일본의 각축이 날로 예각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중은 항공모함까지 전진배치하며 대치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그 뜨거운 전선의 한가운데에 던져져 있습니다. 우리의 영토로 되어 있는 이어도가 일본에 이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포함되어 버렸습니다. 동북아에서 바둑판의 사석이요 장기판의 졸 신세인 겁니다. 게다가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양자택일의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교역 규모가 미국의 2.5배나 되는 중국, 군사적으로 전시작전권까지 쥐고 있는 미국이 압박하고 있으니, 우리가 어느 쪽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중국은 그동안 박근혜 정부에 정성을 많이 기울였죠. 지난번 방문했을 때만 해도 최상의 예우를 했습니다. 순진하게도 이 정부는 그것을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로 만방에 온갖 자랑을 늘어놨습니다. 박 대통령 저서가 중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느니, 그의 패션이 유행하고 있다느니 따위의 뉴스도 심심찮았습니다. 그런 환대에 눈이 어두워진 사이 중국은 이어도는 물론 마라도 일부까지 제 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켰습니다. 눈 뜨고 코 베인 꼴이죠. 그런 한국에 대해 미국은 드러내놓고 미국과 일본의 대중국 견제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를 위해 일본과 군사협력 등 전면적인 관계개선을 강권했고요. 미 국방장관은 직접 청와대로 대통령을 예방해 이런 주문을 했다죠. 이 정부는 말로는 반발하면서, 실제로는 그 힘에 밀려 하나둘씩 내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사실상 용인한 것은 그 상징입니다.

문제는 이런 신세를 운명의 장난으로 돌릴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압력을 슬기롭게 비켜가면서 위협을 완화할 수 있는 선택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공연한 자존심과 국내 정치의 요구에 따라 이를 무시했죠. 한국이 미국과 미국의 압력에 맨살로 노출된 것은 남북 긴장이 강화되면서 비롯됐습니다. 북과 직접 문제를 풀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포기한 것이죠. 그 대신 어리석게도 중국을 통해 북의 변화를 이끌어내려 하고, 미국에는 북에 대한 압박을 요구했죠. 이렇게 스스로 함정을 팠으니 주변 국가들이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겠습니까.

자명한 이치이지만, 한반도의 불안은 외세 개입을 불러옵니다. 구한말에도 그랬고, 해방공간에서도 그랬습니다. 한반도 유사 사태가 주변국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그들의 간섭을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일본은 100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한반도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기를 써왔습니다. 지금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집단적 자위권 등 하고 싶은 일들 다 하고 있습니다.

한시바삐 한반도의 안정을 추구해야 합니다. 화해협력을 위한 조처들을 취하고, 정치·군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합니다.

곽병찬 대기자

그래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국내 정치가 안정돼야 하고, 이를 위해선 국민통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주변 강대국들의 먹잇감 다툼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이것 말고 달리 삼계화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잘못 끼운 단추는 모두 다시 풀고, 처음부터 다시 끼워야 합니다. 더는 지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개인의 아만(我慢)은 저를 화택에 빠뜨리지만, 대통령의 아만은 국민을 저 첩첩한 불길 속으로 밀어넣습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